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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순정'속 첫사랑의 기억과 상실 그리고 시간

by Seulgirok 2025. 12. 22.
 
 

목차

1. 기억: 사랑보다 오래 남아 삶을 지배하는 감정

2. 상실: 사랑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인식되는 감정

3. 시간: 감정을 지우지 않고 의미를 바꾸는 흐름

 

영화 순청 포스터
영화 순청

 

개요 : 드라마 · 대한민국 / 113분

개봉 : 2016. 02. 24

감독 : 이은희

주연 : 도경수(범실), 김소현(수옥), 연준석(산돌), 이다윗(개덕), 주아름(길자), 김지호(어른 길자), 박해준(민호), 박용우(형준), 이대연(수옥부) 등

 

영화 '순정(2016)'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조를 통해 첫사랑이라는 감정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왜곡되며 끝내 인간의 삶에 어떤 흔적으로 남는지를 그린 멜로드라마다. 이 작품은 첫사랑의 설렘이나 아름다움보다, 그 감정이 끝난 이후 남겨지는 공백과 후회를 중심에 둔다. 순정은 사건의 극적 전개보다 감정의 지속성에 주목하며, 사랑이 사라진 뒤에도 기억이 인간을 어떻게 붙잡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이 글에서는 영화 순정의 줄거리를 기억, 상실, 시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석하며, 이 영화가 왜 단순한 청춘 멜로가 아니라 기억의 윤리를 다루는 작품인지를 분석한다. (*영화 내용 및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음)

 

 
 

기억: 사랑보다 오래 남아 삶을 지배하는 감정

 

영화 '순정'의 줄거리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도착한 한 통의 편지를 계기로 과거의 기억이 현재로 소환되며 시작된다. 이 구조는 기억이란 스스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계기와 감각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는 점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기억은 미화되지 않는다. 첫사랑의 순간들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다. 주인공 범실과 수정이 나누는 감정은 분명 진실하지만, 그 감정은 말로 설명되지 못하고 오해와 침묵 속에서 축적되어 쌓인다. 영화는 기억이 선택적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잘 표현하여 집요하게 보여준다. 행복했던 순간만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감정과 지키지 못한 약속이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순정에서 기억은 과거를 재현하는 장치가 아니라, 현재의 감정을 다시 흔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성인이 된 범실은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편지를 통해 소환된 기억 앞에서 여전히 과거의 감정에 머문다. 이는 기억이 시간이 흘러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지고, 그 의미를 바꾸며 인간의 삶에 개입한다. 순정은 기억이란 지나간 사랑의 잔재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구성하는 감정임을 말한다. 이 영화에서 기억은 치유의 도구가 아니라, 상처를 다시 열어보게 만드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달콤함보다 고통에 가깝다. 순정은 기억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억은 잊힐 수 없으며, 그렇기에 인간은 기억을 안고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반을 통하여 보여준다.

 

 
 

상실: 사랑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인식되는 감정

 

영화 '순정'에서 상실은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상실은 시간이 흐른 뒤, 그 사랑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에 비로소 그 형태를 갖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잃는 순간보다, 그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깊은 상실감을 경험한다. 범실과 수정의 관계는 명확한 이별이나 갈등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지 못한 감정과 어긋난 타이밍과 순간들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이 점에서 순정의 상실은 극적이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영화는 상실을 갑작스러운 사고나 비극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선택과 침묵이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성인이 된 범실이 느끼는 상실은 수정이라는 인물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그 감정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상실은 상대를 잃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는 부분의 자각이다. 순정은 이 상실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재정의한다. 사랑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끝난 이후에 남겨지는 감정의 무게로 증명된다. 영화 속 상실은 치유되지 않는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으며, 상실은 기억들과 결합해 더 깊어진다. 순정은 상실을 극복의 대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상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상실은 실패가 아니라, 인간이 감정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는 흔적이라고 보여준다.

 

 
 

시간: 감정을 지우지 않고 의미를 바꾸는 흐름

 

순정에서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은 감정을 더 선명하게 만들고,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며, 동일한 감정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범실과 수정에게 사랑은 막연하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능력은 없다. 시간이 흐른 뒤 성인이 된 범실은 그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다. 순정은 이 지점에서 시간의 잔인함을 드러낸다. 이해는 늦게 오고, 선택은 이미 지나간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을 단순히 비극적인 요소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시간은 감정을 지워버리지는 않지만, 그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다. 성인이 된 범실은 과거를 후회하면서도, 그 감정이 자신의 삶을 구성해 왔음을 인정한다. 순정은 시간이란 망각의 도구가 아니라,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감정에 매달리는 방식은 달라진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 대신 상처를 이해하게 만든다. 순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장의 의미를 제시한다. 성장은 감정을 잊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상태다. 시간은 사랑을 지우지 않고, 사랑을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흐름이다.

 

영화 순정은 첫사랑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감정의 책임을 묻는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상실은 치유되지 않으며,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감정들을 안고 살아간다. 순정은 바로 그 지점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랑은 지나가지만, 기억은 남으며, 그 기억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