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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메뉴' 재조명 (미식, 계급, 예술)

by Seulgirok 2025. 12. 7.
 
 

목차

1. 미식: 요리는 감동인가, 권력인가

2. 계급: 먹는 자와 먹히는 자

3. 예술: 창작은 자유인가 고통인가

 

영화 더 메뉴 포스터
영화 더 메뉴

 

개요 : 스릴러 · 미국 / 107분

개봉 : 2022. 12. 07

감독 : 마크 미로드

주연 : 랄프 파인즈, 안야 테일러 조이, 니콜라스 홀트, 홍 차우, 자넷 맥티어, 주디스 라이트, 존 레귀자모 등

 

2022년 공개된 영화 '더 메뉴(The Menu)'는 단순한 공포 스릴러가 아닙니다. 고급 레스토랑을 무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 예술의 의미, 소비문화의 허상 등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동시에 깊은 사유로 이끕니다.
이 작품은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전개와 정교한 요리들을 통해 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급스러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진짜로 원하는 걸 먹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더 메뉴의 줄거리 요약은 물론, 영화 속 상징적 장면과 핵심 메시지를 ‘미식’, ‘계급’, ‘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깊이 있게 해석합니다. (*영화 내용 및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음)

 

 
 

미식: 요리는 감동인가, 권력인가

 

영화 '더 메뉴'의 무대는 외딴섬에 위치한 초고급 레스토랑 ‘호손(Hawthorn)’입니다. 셰프 슬로윅(랄프 파인즈)은 요리를 예술로 끌어올린 인물로 추앙받지만, 그는 이미 인간과 예술의 본질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상태입니다.
레스토랑에 초대된 이들은 모두 ‘미식’을 소비하는 입장에 있는 상류층 인물들입니다. 투자자, 음식 비평가, 배우, 기술 부호, 푸드 블로거 등은 각각의 욕망을 안고 섬에 도착하고, 셰프는 이들을 한 끼 식사와 함께 하나의 ‘퍼포먼스’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강조되는 건 요리가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상징, 예술이란 이름 아래 포장된 폭력성을 보여주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각 요리에는 테마가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셰프의 메시지, 비판, 그리고 처벌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특히,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계층 바깥의 인물’만이 진정으로 음식이란 ‘먹기 위한 것’이라는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 셰프는 그녀에게 오히려 존중을 보냅니다. 이는 미식의 예술성이 결국 소비자 중심이 아니라 창작자의 자기 욕망과 시장 논리에 휘둘리는 모순적 구조를 비판합니다.

 

 
 

계급: 먹는 자와 먹히는 자

 

'더 메뉴'는 계급 비판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레스토랑은 물리적으로 ‘섬’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운영되며, 셰프와 직원들은 마치 군대처럼 숙소에서 합숙하고, 하루 24시간 셰프의 명령을 따릅니다.
고객들은 외부 세계의 부를 상징하는 존재들이지만, 이 공간에서는 오히려 셰프가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영화 속에서 ‘먹을 수 있는 사람’과 ‘요리하는 사람’의 관계는 뒤집히며, 기존 권력 구조가 붕괴되는 아이러니한 무대가 형성됩니다.
손님들이 요리를 즐기며 셰프의 창조물을 평가하려 할 때마다, 슬로윅은 그들에게 요리를 통한 불편한 진실을 던집니다. 그가 준비한 식사는 단순한 코스 요리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류층’이라 불리는 이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공허한지를 해부하는 상징적 퍼포먼스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는 ‘소비자’입니다. 영화는 과연 소비자가 창작자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인지, 아니면 단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인지 묻습니다.
결국 마고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그녀가 이 계급 시스템 밖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즉, 진정한 생존은 가진 자가 아니라, 욕망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에게만 가능하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예술: 창작은 자유인가 고통인가

 

슬로윅 셰프는 처음엔 요리를 사랑했던 예술가였습니다. 하지만 부자 고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점점 자아를 잃었고, ‘예술가로서의 자신’과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 사이의 괴리에 지쳐버린 인물입니다.
그는 요리를 더 이상 즐기지 않고, “내 요리를 먹는 사람 중 감동한 이는 없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예술이 상업화되면서 본래의 목적과 감동을 잃어버리는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 중 하나는 ‘스모어(S’more)’ 장면입니다. 모두를 마시멜로와 초콜릿으로 감싼 후 불태우는 이 장면은, 달콤한 예술 뒤에 숨겨진 처절한 소모와 희생, 그리고 창작자의 분노를 시각화한 극단적 표현입니다.
반면 마고는 셰프에게 단순한 ‘치즈버거’를 요청합니다. 이 순간 슬로윅은 진심으로 요리를 대하며, 오래전 요리사로서의 초심을 되찾는 미소를 지으며 햄버거를 만듭니다.
이 장면은 “예술은 거창한 상징이나 과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따뜻함을 전하는 것”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진짜 예술은 살아남는 것이고, 살아 있는 자는 창작을 멈추지 않는다는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더 메뉴는 장르적으로는 블랙코미디와 스릴러를 결합한 영화지만, 그 속에는 미식이라는 테마를 통해 계급 구조, 예술의 허상, 자본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는 사회적 풍자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예술을 ‘경험’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비’만 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은 진짜 욕망인가, 사회가 주입한 허상인가?
이 영화는 단지 충격적 결말로 끝나는 영화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을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한 끼 식사와도 같습니다. 이제 당신의 ‘메뉴’를 다시 확인해 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