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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가 더 분노를 부르는 영화 '재심' (정의, 책임, 국가)

by Seulgirok 2025. 12. 18.
 
 

목차

1. 정의: 판결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질문

2. 책임: 아무도 지지 않는 구조의 폭력

3. 국가: 보호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때

 

영화 재심 포스터
영화 재심

 

개요 : 드라마 · 대한민국 / 119분

개봉 : 2017. 02. 15

감독 : 김태윤

주연 : 정우(이준영), 강하늘(조현우), 김해숙(순임) 등

 

영화 '재심(2017)'은 실제 재심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국가 권력에 의해 한 개인의 인생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회고발 영화다. 이 작품은 억울한 누명을 쓴 청년과 그를 다시 법정으로 세우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재심은 감정적인 신파에 의존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영화 재심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의, 책임,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하며, 왜 이 영화가 단순한 법정극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되는지를 해석한다. (*영화 내용 및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음)

 

 
 

정의: 판결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질문

 

재심이 말하는 정의는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완성되는 개념이 아니다. 영화는 이미 유죄 판결을 받고 수년간 복역한 현우의 삶을 보여주며, 판결이 곧 정의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과 강압, 조작된 진술은 법적으로는 묻히지만, 개인의 삶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재심은 이 지점을 통해 정의가 제도적 절차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영화 속 변호사는 사건의 승패보다 왜 이 사람이 범인이 되어야 했는지를 묻는 데 집중한다. 이는 법의 형식적 정당성과 실질적 정의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질문이다. 재심은 정의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시간 동안 발생한 고통은 어떤 무죄 판결로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영화는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조차 환희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면은 허탈함과 공허함으로 채워진다. 이는 정의가 회복되었다는 선언이 얼마나 늦었는지를 보여주는 연출이다. 재심은 정의가 지연될수록 그것은 더 이상 완전한 정의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책임: 아무도 지지 않는 구조의 폭력

 

재심에서 가장 날카롭게 제기되는 질문은 누가 이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가라는 문제다. 영화는 사건을 조작한 수사관, 이를 묵인한 조직, 그리고 침묵한 사회를 차례로 비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직접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구조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재심은 책임이 분산될수록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고발한다. 수사관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고, 조직은 과거의 일이라 선을 긋는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만이 모든 결과를 떠안는다. 영화는 이 불균형을 통해 책임의 윤리적 의미를 되묻는다.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해서 도덕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재심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또 다른 폭력임을 보여준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책임은 흐릿해지고, 사건은 기록 속 한 줄로 축소된다. 그러나 피해자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화는 이 대비를 통해 책임이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임을 말한다. 재심은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 앞에서 얼마나 쉽게 침묵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국가: 보호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때

 

재심에서 국가는 개인을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강력한 가해자로 묘사된다. 영화 속 국가는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권리를 무너뜨린다. 수사의 효율성과 체면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선택은 국가 권력이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심은 국가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의 주체로 그린다. 이는 국가 역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임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영화는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 피해는 개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무죄 판결 이후에도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충분하지 않다. 이는 정의의 회복이 얼마나 형식적으로 처리되는지를 보여준다. 재심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경계한다. 법과 제도는 완전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감시와 질문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는 국가가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을 때,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재심에서 국가는 배경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져야 할 주체로 명확히 자리한다.

 

재심은 억울한 한 사건의 해결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정의가 무엇인지, 책임은 어디까지 물어야 하는지, 국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끝까지 묻는다. 영화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관객에게 넘긴다. 재심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그 질문이 영화관을 나선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책임은 회피될수록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재심은 그 불편한 진실을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기록한 영화다.